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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이야기

야수파 다시읽기. 강렬한 색채, 음악이 들리는 듯한 춤추는 그림.

by 개구리연못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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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 野獸派 Fauvisme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이다. 이성이나 의지보다는 감각과 감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대표한다. 야수파는 엄밀히 말하자면 강한 이념을 가지고 생긴 유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인상파나 신인상파, 후기 인상파의 화풍에 반기를 드는 젊은 예술가들의 일시적인 만남에서 만들어졌다. 원색과 같이 순수한 색을 사용하고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의 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또한 굵은 선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 대담하게 개성을 드러냈다. 새로운 색을 결합하고 그림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실험적이어서 전통적인 사실과 같이 표현하는 그림 방식의 색채 체계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그림 속 대상을 표현할 때 명암과 양감 또한 파괴하였다.

야수파는 강렬한 색과 표현이 대표적이다. 야수파의 이름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야수파 예술가들을 비판하는 비평가의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마치 짐승과 같이 원시적이고 제멋대로인 이들의 작풍을 비평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이들은 야수파 포비즘 이라는 표현을 마음에 들어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과를 생각하고 색칠할 때는 탐스러운 빨강을 주로 사용하지만 야수파 예술가들은 파랑, 초록을 사용하는 등 기존의 색채를 해체하고 본인의 감성을 중요시하였다. 야수파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새로운 그림에 대해 놀라움과 비판을 함께 받았다.

야수파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하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강렬한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젊은 예술가들의 일시적인 모임으로 몇차례의 전시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었다. 결속력은 약하였으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작품을 감상하여도 그 속에서 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술가들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

 야수파의 리더라고도 할 수가 있는 앙리 마티스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의 드로잉은 인테리어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야수파의 모임은 앙리 마티스와 함께 그와 동년배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졌다. 파블로 피카소의 라이벌로 평가되는 앙리 마티스는 프랑스 화가이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은 주로 경쾌한 색감과 자유로운 그림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하지만 앙리 마티스는 생에 2번의 세계대전을 프랑스 중심에서 겪었다. 그런데도 마티스는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려 행복을 전했다. 이와 반대로 파블로 피카소는 전쟁의 참혹함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앙리 마티스의 첫 야수파 작품은 그의 아내를 그림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사람을 그릴 때 피부 표현을 위해 생기가 도는 살결 표현을 하곤 하지만 마티스는 이런 전통적인 표현 방법을 파괴하고 초록, 푸른빛을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하였다.

 

 

 


 앙리 마티스는 색채의 마술사라고 할 수 있다. 야수파, 포비즘 이름과 같이 자신의 감정과 감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순수함을 중요시하였다. 화가가 대상을 관찰하며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감정을 중점으로 색과 모양을 만들어 내었다. 앙리 마티스의 정물화를 감상해보면 테이블, 꽃병, 꽃, 인물들이 다채롭게 구성되어있다. 정물화 속에 사물에 명암과 원근감을 해체되었으며 원근법 또한 사용되지 않았다.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행위보다는 예술의 즐거움에 본질을 두어 보는 사람들 또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앙리 마티스는 노년에도 작품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드로잉, 페인팅이 어려워지자 과슈로 색칠된 색종이를 활용하여 가위로 잘라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 기법을 오려서 잘라내기, 컷아웃 드로잉이라 부른다.
앙리 마티스의 예술에 대한 표현 방법과 사랑은 야수파를 이끌고 컷아웃 드로잉이라는 독자적인 그의 화풍을 완성하게 되었다. 

앙드레 드랭

앙드레 드랭
 앙드레 드랭은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 모임을 이끌어갔다. 드랭은 미술을 공부하다가 마티스를 만나며 함께 주변 풍경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하지만 군대에 입대함에 따라 작품 활동을 잠시 중단하였다. 전역 후 드랭은 다시 그림을 그렸다. 드랭은 친구인 마티스와 함께 지중해 마을에 여름 동안 체류하였다. 이곳에서의 작품들은 살롱에서 전시로 세상에 소개된다. 생생한 원색을 사용하고 자연적인 색이 아닌 작가의 개인적인 감성이 담긴 색으로 이루어져 비평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드랭은 좋은 기회로 런던으로 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 드랭이 표현한 런던의 풍경은 다른 예술가들과는 다른 표현 기법으로 색다른 런던의 초상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런던의 템스강의 물빛을 화폭에 담을 때 총천연색의 점을 찍어 강물에 비쳐 반짝이는 햇빛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후에 조르주 쇠라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 작품을 그려간 예술가 블라맹크. 동료 예술과 들과 함께 미술작품을 만들어 가며 자연물을 주로 그렸다. 블라맹크의 초기 작품은 밝은 색채와 곡선을 사용하여 그려졌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영감을 받을 것으로 평가된다. 블라맹크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자신의 감성을 화폭에 담아냈다. 블라맹크의 가정환경은 조금 독특하다. 음악가의 부모님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블라맹크의 작품에는 생명력이 폭발하는 듯한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폭발하는 예술적 기질을 다채로운 색채와 곡선적인 선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그림을 그려냈다.

미술로생각하기, 생각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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