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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이야기

다다이즘이 무엇인가요? 다다이즘 다시읽기

by 개구리연못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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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Dadaism / 다다 dada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고전주의 미술과 기존의 모든 예술사조 들과 형식을 거부하고 부정하였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합리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고 비합리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 아름답지 않다고 평가돼 온 물체들을 예찬하였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태도를 가진다.
다다이즘의 다다는 이름이 생성된 이야기가 다양하다. 어린아이의 옹알이와 같은 다다다다 소리를 뜻한다는 것. 어린아이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 목마를 가르치는 것. 등인데 공통적인 의의는 무의미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헛된 상실감과 허탈함이 반영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로 흡수된다. 다다이즘이 무의미함, 헛됨을 이야기하였다면 초현실주의에서는 이성을 뛰어넘어 무의식과 공상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다다이즘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을 다다이스트라고 하는데 대표적 작가로는 마르셀 뒤샹이 있다. 스위스에서 처음 생성되어 점차 유럽, 미국으로 퍼져나가며 이후 독일과 중부 유럽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마르셀 뒤샹의 샘

다다이즘의 시작

처음 다다이즘이 시작된 곳은 스위스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위스는 중립국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예술에 대한 탄압이 낮았다고 한다. 망명으로 조국을 떠나온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은 자연스럽게 스위스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스위스의 '카바레 볼테르'라는 카페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다고 한다. 젊은 예술가들은 모임에서 서로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데, 대화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단어가 '다다'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모임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 아름다움의 목표인 무의미함, 헛됨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무작위로 선정된 아무 의미 없는 'dada'라는 단어와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dada'라는 단어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이때 함께한 예술가로는 리하르트 휠젠버그, 마르센 얀코, 후고 발, 트리스탕 차라, 장 아르프, 에미 헤닝스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교적 어린 예술가들이란 것이다. 그중 트리스탕 차라는 1918년 다다 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때 트리스탕 차라는 예술가들이 자의적으로 모여 다다이즘을 이야기했음을 밝혔다.

다다이즘의 파생

독일
스위스에서 다다이즘의 시작을 함께한 리하르트 휠젠버그는 독일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1918년에 열린 행사인 '다다의 밤'에서 '다다 선언 1918'을 읽었다고 한다. 이후 1920년 쾰른에서 다다 전시회를 열었다.

미국
다다이즘은 유럽 내에서 빠른 시간에 퍼졌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다다이즘 대표 예술가인 후고 발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며 후고 발은 미국 뉴욕에서 마르셀 뒤샹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함께 예술 활동을 주도하며 다다이즘을 주도하였다. 마르셀 뒤샹은 프랑스 예술가이다. 마르셀 뒤샹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은 처음 등장하였을 때 전무후무한 충격적으로 예술계에 주었다.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유럽
1920년대 마르셀 뒤샹이 미국에서 작품 샘을 발표할 시기에 유럽의 다다이즘은 프랑스 파리로 중심지를 옮겨갔다. 다다 선언을 발표하였던 트리스탕 차라는 막스 자코프, 기욤 아폴리네, 앙드레 브르통, 클레멘 판셀스 등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트리스탕 차라는 프랑스 파리에 모인 많은 젊은 예술가들의 혁신적인 태도와 이전의 미술을 전복하여는 전위예술들에 큰 매력을 느끼며 프랑스 파리로 이사를 한다. 앙드레 브르통과 함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다다이즘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20년 중반에 들어서며 다다이즘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시아
스위스에서 시작하여 독일, 유럽, 미국에서 성행한 다다이즘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불씨를 크게 일으켰다가 사그라들며 초현실주의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다다이즘의 영향은 서구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다다이즘을 자의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당시 일제 강점기였던 우리나라 또한 다다이스트로 활동한 예술가인 고한용이 있다.

다다이즘의 정신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의 아픔에 의해 탄생한 예술 사조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다다이즘의 특성은 전쟁으로 인한 허탈함, 증오, 무기력함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적 분노와 무기력함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함으로 나타난다.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구조, 형식들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를 비판하고 증오하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고전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해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조롱하였다.

고전미술 대표작품인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넣고 L.H.O.O.Q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 로 해석되는 글을 적어 조롱하였다-마르셀 뒤샹-L.H.O.O.Q

마르셀 뒤샹의 샘은 권의 적인 예술세계와 형식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에 자신이 발견한 변기를 가져옴으로써 이전의 모든 사회적 관습을 비판하였다. 마르셀 뒤샹뿐만 아닌 많은 다다이스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존의 예술을 부정하고 파괴하였다. 전통적인 그리기 방법이 아닌 프로타주(Frottage), 콜라주(Coll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 Automatism)등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미술로생각하기, 생각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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